노무현, 그 가증스럽고 얄팍하고 씁쓸한 삶과 죽음에 대하여 1/n

1. 노무현이 표절한 촘스키의 생각

2007년 6월 16일, 노무현은 노사모 총회에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고 말했다. 노무현의 묘비에도 새겨진 유명한 말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노암 촘스키가 1999년에 한 말을 표절한 것이다.

촘스키는 "힘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민중이 조직화된다면 어떤 일이라도 해낼 수 있습니다."라고 했고, 이때 '파이낸셜 타임스'의 기사를 인용했는데, 거기에 등장한 표현이 "Horde of vigilantes(자경단 무리)"이다. 이 표현은 한국어판에서 "잠을 자지 않는 파수꾼들"이라고 번역됐다. 바로 "깨어 있는 시민"의 원형이다.

이 발언은 프랑스 언론인과 인터뷰 중에 나온 것으로, 전체 내용은 2년 후인 2001년에 책으로 출판되었고, 우리나라에는 2002년에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관련 내용은 아래와 같다:

[질문] 권력은 피라미드 구조라는 속설을 믿습니까?

[촘스키] 피라미드의 정상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은 독재주의 체제가 아닙니다. 물론 독재적 성격을 띤 집단들이 이 세상을 활보하지만, 이 세상을 움직이는 시스템은 결코 획일적이지 않습니다. 때때로 민중의 과격한 조직들이 권력자들에게 양보를 받아낼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닐 수도 있습니다. 1998년 MAI의 체결을 무산시킨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다국적 기업은 물론이고, 언론까지 이 협정을 지원했습니다. 세계은행과 IMF도 이 협정의 타결을 바랐습니다… 말하자면 이 땅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권력집단들이 이 협정을 지원했습니다. 그래도 민중이 이 협정을 반대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에 협상은 3년 동안 아주 은밀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기업계와 언론계는 이런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비밀은 언젠가 새어나가게 마련입니다. 마침내 그 소식이 전투적인 조직들에게 전해졌습니다. 민중의 조직들은 인터넷을 최대한 활용하여 힘을 결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OECD를 물러서게 만들었습니다. 그 프로젝트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경제일간지인 런던의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 』는 그 조직들을 ‘잠을 자지 않은 파수꾼들Hordes of vigilantes’ 이라 칭하며 씁쓰레한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산업계와 기업계의 대표들은 눈물을 삼키며 “재앙이다. 의회의 묵인아래 비밀리에 협상해 온 무역협정이 이제는 끝났다!”고 오열을 터뜨렸습니다. 이 땅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집단들이 똘똘 뭉쳤지만, '오합지중'이나 다름없는 민중의 조직들에게 그들은 물러서야 했습니다. 다수의 힘없는 조직들이 승리를 거둔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승리였습니다. 그래도 기념비적 승리였고 감동적인 소식이었습니다. 힘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민중이 조직화된다면 어떤 일이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산이라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 드니 로베르, 베로니카 자라쇼비치,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강주헌 역, 2002, pp.63-65 )


이 짧은 글에 노무현 발언의 모티프인 "최후의 보루", "깨어있는 시민", "조직된 힘"이 모두 들어 있다. 권력집단의 총공세를 마지막에 막아낸 민중, 잠을 자지 않는 파수꾼들, 어떤 일이라도 해낼 수 있는 조직된 민중의 힘이 그것이다. 이것들을 모두 합치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된다.

문단 마지막의 "산이라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라는 구수한 표현은 원서에는 없는 번역자가 첨가한 부분이다. 이 표현은 노무현이 퇴임 이후에 사용했던 필명인 노공이산(盧公移山 노무현이 산을 옮긴다)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즉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그리고 노공이산이 촘스키의 책 한 문단에 다 들어 있는 것이다.

이게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무현은 이 책을 읽은 것이다. 모든 게 우연의 일치일 뿐 표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생각해도 된다. 다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법적으로는 표절이 아닐 수 있지만 촘스키의 것을 가로채 자기 것인 양 행세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이기에 광의적 의미로 표절이다.

게다가 노무현은 2007년 8월 31일 <오마이뉴스> 오연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권력은 만능이 아닙니다, 최정점도 아닙니다. 진짜 권력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시민권력입니다. 각성하는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시민권력입니다."
( [오연호 리포트: 인물연구 노무현 ⑨] 노란 풍선 든 스무 살 여대생에게, 오마이뉴스, 2009.06.01 )

문장을 분석해보면 기껏해야 촘스키 발언의 요약이자 변주에 불과하다. 각성(覺醒)이란 깨어있는 것이기에 "각성하는 시민"은 "깨어있는 시민"과 같은 말이다.

  • 노무현: "정치권력은 만능이 아닙니다, 최정점도 아닙니다."
  • 촘스키: "피라미드의 정상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은 독재주의 체제가 아닙니다. 물론 독재적 성격을 띤 집단들이 이 세상을 활보하지만, 이 세상을 움직이는 시스템은 결코 획일적이지 않습니다."
  • 노무현: "진짜 권력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시민권력입니다. 각성하는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시민권력입니다."
  • 촘스키: "때때로 민중의 과격한 조직들이 권력자들에게 양보를 받아낼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닐 수도 있습니다. …이 땅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집단들이 똘똘 뭉쳤지만, '오합지중'이나 다름없는 민중의 조직들에게 그들은 물러서야 했습니다.…힘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민중이 조직화된다면 어떤 일이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이뿐 아니다. 촘스키의 "민중의 조직들은 인터넷을 최대한 활용하여 힘을 결집하기 시작했습니다."라는 부분은 노무현의 "그런데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시민사회도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대항매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시민들이 권력을 만드는 데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와 통한다.

인터뷰어 오연호에 따르면, 노무현은 퇴임 후를 준비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고 그 공부를 바탕으로 "퇴임하고 나서 언젠가는 정치학 교과서를 하나 쓰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2002~2007) 촘스키의 책도 읽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여러 정황 증거들이 있다. 이를 근거로 나는 노무현이 촘스키를 표절했다고 확신한다.

안철수가 인용해서 유명해진 윌리엄 깁슨의 말이 있다: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다만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안철수는 처음부터 인용이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그래서 이 말을 안철수가 했다고 오해하는 사람은 없다. 노무현도 그랬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다면 노무현은 왜 촘스키를 숨겨야만 했을까.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촘스키의 논리는 필요했을까.


2. 촘스키가 필요했던 노무현, 촘스키를 숨겨야만 했던 노무현

앞서 살펴봤듯이 촘스키가 말한 "조직된 민중"이 맞서 싸워야할 적은 똘똘 뭉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권력집단들"이다. 이들은 MAI(다자간 투자협정) 같은 것을 추진하는, 이를테면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유착된 자본권력, 언론권력, 정치권력이다.

그런데 노무현은 한미FTA 비롯해 각종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 당사자이다. 게다가 삼성정권이라고 불릴 정도로 삼성과 유착된 정권의 수반이었고, 심지어 삼성X파일을 묻어버린 당사자이기도 하다. 알고 보니 노무현이야말로 "조직된 민중"의 명백한 적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이 뻔뻔하게 촘스키를 인용할 수 있었을까?

더구나 노무현은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라고 한 적도 있는데 공교롭게도 노무현이 삼성X파일을 물타기 위해 대연정을 제안한 2005년 7월 4일 바로 다음 날이었다. 이 발언도 시장에 정권이 개입하지 않듯이, 삼성에 대해 수사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던 것이다.

요컨대 촘스키의 "조직된 민중"은 노무현과 삼성 같은 유착된 권력자를 상대로 싸우는 사람들이지만, 노무현의 "조직된 시민"은 노무현과 함께 노무현의 정적을 상대로 싸울 사람들이다. '조직된 대중'이라는 용어는 비슷한데 맥락이 전혀 다르다. 실제로 노무현은 자신과 시민을 "우리"라고 표현했다. "결국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행동 속에 있어요, 궁극적으로 거기 있는 것이지, 다른 메커니즘으로서는 우리가 도저히 이길 수 없어요."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노무현이 촘스키를 밝혔다면 엄청나게 조롱당했을 것이다. 박근혜가 울워스의 쥐덫 얘기를 했다가 망신당한 것을 떠올리면 된다. 박근혜야 원래 그러려니 하지만, 노무현이 원하는 포지션은 토론의 달인에, 사상가에, 앞으로 정치학 책까지 쓸 지식인이다. 그렇기에 맥락도 모르고 인용했다는 비판과 조롱은 차마 감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의 활동에 지장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너무 큰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촘스키를 숨긴 것이다. 노무현이 가증스러운 이유다.

그렇다면 노무현에게는 왜 촘스키의 논리가 필요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깨시민 발언이 나온 맥락을 알아야 한다. 2007년 6월 16일은 노무현이 본격적으로 퇴임 후를 준비하던 시기다. 퇴임 후에도 정치력을 유지하고 장차 정권을 탈환하려면 조직과 자금이 필요한데, 당시 상황은 열링우리당이 해체되고 친노는 폐족으로 전락함으로써 정치조직과 자금줄을 모두 잃은 상태였다. 남은 건 한 줌의 노사모 뿐이었으니 그 노사모를 발판으로 재기할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 촘스키가 길을 보여준 것이다.

사실 노무현의 깨시민 조직화 전략은 마오쩌둥이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홍위병을 조직했던 것과 닮았다. 그래서 내가 깨시민을 노위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차이점도 있다. 촘스키의 말처럼 "인터넷을 최대한 활용하여 힘을 결집하기 시작"하여 결국 가장 강한 권력 집단조차 이겨버린 조직된 민중의 가공할 힘! 이건 홍위병을 넘어선 것이다. 노사모와도 다르다. 시민이 지지자나 감시자가 아니라 "권력"이 될 수도 있다는, 시민이 '안티테제'가 아니라 '테제'가 될 수도 있다는 발상은 매우 독특한 것이다. 이게 노무현에게 촘스키가 필요했던 이유다.

이런 촘스키의 생각은 노무현의 "지금까지 시민운동이 권력을 제어하는, 권력의 불법이나 권력의 남용을 제어하는 데 집중돼 있었죠. 이제는 대안까지 함께 만들어 가야 합니다. 말하자면 그야말로 주권자로서, 권력의 주체세력으로서 시민을 양성해 나가야 되는 것이죠."로 이어졌다. 다만 촘스키는 대중을 위해 조직화를 제안했고 노무현은 자기를 위해 조직화를 선동했다는 차이는 있다. 시민권력에 대한 노무현의 입장은 얼핏 촘스키와 비슷해 보이나 본질은 전혀 다른 사이비다.


3. 노무현의 길이자 희망이었던 정권탈환

정치조직을 재건하려고 노무현은 치밀하게 준비했다. 대통령 기록물 사본인 '이지원'을 봉하마을로 옮겨 정보력과 콘텐츠를 강화하고, 털털한 서민 행보도 연출했다. 깨시민을 양산해낼 구심점이 될 웹사이트도 만들었다.

2002년 대선에 노무현은 3개 사이트를 중심으로 세력을 모았다.
- 공식사이트: 노하우(www.knowhow.or.kr)
- 팬클럽: 노사모(www.nosamo.org)
- 외곽의 토론사이트: 서프라이즈(www.surprise.or.kr)

2008년 퇴임을 준비하며 노무현은 3개 사이트를 다시 복구하거나 만들었다.
- 공식사이트: 사람사는세상(www.knowhow.or.kr)
- 팬클럽: 노사모(www.nosamo.org)
- 외곽의 토론사이트: 민주주의 2.0(www.democracy2.kr)

더불어 새로운 자금줄도 필요했기에 수익사업을 시작했고, 신흥경제세력과의 연대를 꾀했다.

"나도 정치권력을 얼마간 좀 가지고 있었으니까, 돈 있는 사람도 좀 친해 놓고, 또 그중에 나하고 의기투합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이런 사람들 좀 모아 가지고 물적 토대를 만들고, 그렇게 해서 이제 이 작업들을 뜻있는 사람들이 좀 계속하게, 참여정부의 인적 자원들과 전문가들도 좀 포진시키고…."

"지금 시장경제의 경쟁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있거든요. 뒷거래 시대에 성공한 사람들이 아니라, 관치경제 시대에 성공한 사람들이 아니라 시장경제에서 성공한 새로운 시장의 주류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과 더불어서 새롭게, 어떤 새로운 세력을 한번 묶어보려는 모색도 하고요." ( 오마이뉴스, 같은 기사 )


결국 노무현 공식사이트가 '노하우'에서 '사람 사는 세상'으로 이름을 바꿨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서프아이즈'를 버리고 아예 직영 토론사이트 '민주주의 2.0'을 만들었고, 자금줄이 좀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게 없다. 2002년에 성공했던 방식을 다시 적용했고, 바야흐로 감성적이고 과격하고 생각이 많지 않은, 맹목적이고 열광적이고 멍청한 노위병을 대량으로 뽑아낼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그 목적은 당연히 친노의 정권탈환이다. 일단 이명박에게 정권을 넘기고, 차후에 문재인이나 안희정 등 친노를 내세워 다시 정권을 탈환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2007년 대선에서 노무현은 우리 편 후보들을 손수 저격해 하나씩 죽였고, 친노는 정동영이 아니라 문국현 지지 활동을 했다. 노무현은 이 일에 모든 것을 걸었다. 이렇게까지 말했다:

"시민들이 각성하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관계를 정확하게 꿰뚫어볼 수 있습니다. 언론권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비자의 선택을 통해서 올바른 언론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 가능성이 없다고 하면 제겐 아무 길이...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굳게 믿고, 그래서 시민참여·시민운동을 연구하고 있는 겁니다." (오마이뉴스, 같은 기사 )


각성한 시민, 즉 깨시민을 이용해 정권을 탈환할 가능성이 없다면 노무현에게는 아무 길과 희망이 없었던 것이다. 깨시민의 역할은 말이 좋아 "시민참여·시민운동"이지 결국 정권탈환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이걸 제대로 이해하려면 노무현의 세계관, 혹은 망상을 먼저 이해해야 하는데 글이 길어지니 다음 기회로 미룬다.


4. 노무현을 멈춰 세운 이명박

하지만 이런 뻔한 전략은 이명박도 당연히 알았다. 그래서 기록물 반출을 문제 삼는 것을 시작으로 결국 뇌물죄 수사로까지 몰아붙였다. 노무현의 야심은 이명박에 의해 멈춰 섰고, 희망이 사라져버린 노무현은 포괄적 뇌물죄로 검찰 수사를 받는 와중에 자살했다.

포괄적 뇌물죄는 전두환, 권노갑, 홍인길 등이 유죄를 받은 죄목이고, 박근혜에게 적용된 죄목이다. 박근혜와 최순실이 "경제공동체"라면 노무현과 권양숙은 그냥 공동체다. 정권과 검찰이 처벌을 원한다면 유죄를 피할 길이 없다. 그래서 노무현은 자살해 버렸고, 피의자가 사라져 버렸기에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이렇게 폐족 친노는 살아남았고 부활했다.

2009년 4월 22일, 노무현은 공식사이트에 이런 글을 홈페이지에 남겼다:

저는 이제 이 마당에 이상 더 사건에 관한 글을 올리지 않을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에게도 동의를 구합니다. 이 마당에서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합시다. 제가 이미 인정한 사실 만으로도 저는 도덕적 명분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사람들은 공감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정치적 입장이나 도덕적 명예가 아니라 피의자의 권리를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이것도 공감을 얻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제가 말할 수 있는 공간은 오로지 사법절차 하나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저를 정치적 상징이나 구심점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사건 아니라도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방향전환을 모색했으나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해 고심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 동안에 이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상 더 이대로 갈 수는 없는 사정이 되었습니다.

이상 더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미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적어도 한 발 물러서서 새로운 관점으로 저를 평가해 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저는 오늘 아침 이 홈페이지 관리자에게 이 사이트를 정리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관리자는 이 사이트는 개인 홈페이지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회원 여러분과 협의를 하자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올립니다.
이제 '사람 세상'은 문을 닫는 것이 좋겠습니다.

( ‘사람세상’ 홈페이지를 닫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2009.04.22 )


노무현이 "제가 이미 인정한 사실 만으로도 저는 도덕적 명분을 잃었습니다",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미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사람 사는 세상' 홈페이지 폐쇄를 말할 때는, 이미 정치세력화를 포기한 시점이다.

특이한 건 노무현이 "사람 사는 세상"을 "사람 세상"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사는" 행위, 즉 삶이 사라진 것이다. 깨시민 운동은 실패했고 길과 희망이 사라졌기에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상태가 된 것이다. 말 그대로 깨시민 운동에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다. 계획은 실패했고 모든 게 끝났으니 당신들은 제 살길 찾으라는 의미다.

급기야 2009년 5월 23일 자살할 무렵엔 싸우고 투쟁하는, 각성한(깨어있고 활력 있는) 시민이 아니라 "자연의 한 조각"을 말하고 "운명"을 말하는 수동적이고 무력한, 자포자기한 패배자가 되어 있었다. 그의 자존감은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겨우 견뎌낼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여기서 깨시민 운동의 본질과 한계가 드러난다. 노무현의, 노무현에 의한, 노무현을 위한 운동에 불과했다. 깨시민 운동이 만약 노무현이 없더라도 계속 진행될 수 있는 것이었고, "나를 버리라"는 말이 '당신들이라도 계속 나아가라'는 의미였다면 저런 식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 정말로 떳떳한 사람, 대의를 생각하는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희망을 얘기한다. 여유와 활력과 떳떳함이 있다.

나는 누구의 염려 없이 아주 유쾌하고 명예스럽게,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했다는 자부와, 내가 이렇게 감으로써 자유민주주의는 확실히 보장되었다는 확신을 갖고 즐겁게 갑니다. 아무쪼록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영원한 발전과 10·26민주회복 혁명, 이 정신이 영원히 빛날 것을 저는 믿고 또 빌면서 갑니다.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마음껏 만끽하십시오. - 김재규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의 술을 부어 놓아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 윤봉길 의사

장부가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은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이를지라도 기운이 구름 같도다. 丈夫雖死心如鐵 義士臨危氣似雲 - 안중근 의사


하지만 노무현의 글에는 조금의 희망적인 부분도 없다. 깨시민 운동은 노무현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는 노무현 자신으로부터 버려진 문장이고 신념이다. 이 문장을 버리고 세상을 떠났기에 더 이상 노무현에게 속하지 않는 문장이다.

노무현에게 속하지 않는 것으로 노무현을 기리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노무현의 말도 아니고, 노무현을 대표하지도 않고, 노무현 스스로 버린 말이기에, 노무현의 묘소에 새겨질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노무현의 죽음으로 이득을 볼 자들이, 깨시민을 계속 부리고 싶어서 기어코 비석 받침에 새겼다. 그리고 "아주 작은 비석 하나"가 아니라 피라미드를 흉내 낸 묘소를 만들었다.


5. 피라미드를 표절한 노무현 묘소의 씁쓸함에 대하여
( 노무현 묘소, 노무현재단 )

노무현 묘소의 모티브는 피라미드다. 다만 3차원 피라미드가 2차원 삼각형으로 바뀌었고, 3차원 돌 벽돌이 2차원 박석으로 대체되었다. 피라미드의 터널과 환기구는 통로와 배수로로 바뀌었다. 피라미드 상단의 삼각형은 수반이 되었고, 왕실과 지하실은 헌화대와 지석이 되었다. 이는 묘역 설계자 승효상의 아이디어 스케치를 보면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또한 멕시코 피라미드의 중앙 계단은 노무현 묘소의 중앙 통로가 되었다. 참 노무현스럽게도 묘소까지 표절이다. 이것도 법적으로 표절은 아니지만 가증스럽게 원본을 애써 숨겼고 창의성 없이 가져다 썼다는 건 분명하다.



피라미드는 왕의 무덤이고 부활과 영원불멸을 상징한다. 정치와 종교가 혼합된 권력이데올로기다. 친노가 무엇을 의도했는지는 알겠는데, 1차원 낮아진 피라미드, 대충 비슷한 의사 피라미드, 참으로 이미지 정치로 연명했던 노무현다운 묘소다. 또한 정치에서 종교적 화법을 구사하는 친노다운 미적 감각이다. 비석에 나비가 앉은 모양을 연출하기 위해서 나비를 잡아와 날린 것도 참 친노다운 감성이다.

박정희 신화화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짓을 하면서도 박정희 신화는 욕하고 노무현 신화에는 감동한다. 이런 이율배반 역시 노무현과 친노의 특징이다. 이율배반은 양심 없는 사람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양심이란 시비와 선악을 분별하고 자신과 남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양심이 없다면 그게 어디 제대로 된 사람이겠나. 그래서 친노의 "사람 사는 세상"은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과 같은 말이다.

문재인은 단지 노무현의 친구라서, 아니 오직 노무현이 자살한 덕에 대통령이 되었다. 국민의 심판을 받은 노무현과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든 노무현 사이에 달라진 건 자살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친노가 무슨 짓을 하든,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건 야만적이고 부끄러운 정치다. 우리는 얄팍하고 유치하고 가증스럽고 양심 없고 야만적인 정치권력 치하에서, 또, 부끄럽게 살고 있다.

"열화(deterioration)", "이미지", 가장(simulacre), 의사(pseudo), 사이비(quasi), 형용모순, 이율배반, 허세, 선동... 그리고 안타까움... 노무현 묘소에는 노무현의 삶과 매우 닮은 가증스럽고, 얄팍하고, 씁쓸한 문구 하나가 새겨져 있다. 노무현 사망 8주기 즈음에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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