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생각, 안철수의 무의식 1/n

정치판이란, 정의를 원하는 자와 불의라도 상관없는 자 사이의 싸움판이다. 정의를 원하는 자들은 서로 다른 것이 정의라며 싸우고, 불의라도 상관없는 자들은 더 많은 사익을 위해 싸운다. 연대조차 더 큰 적과 싸우기 위한 것이니 오직 싸우고 있을 뿐이다.

정치판은 원래 싸우라고 만들어진 링이니 싸우는 게 당연하다. 권투시합 나온 선수들이 안 싸우고 있다면 오히려 이게 잘못된 거다. 단언컨대, 정치판에 따뜻함 따위는 없다. 그런 달달한 것을 찾았다는 사람이 있다면 뭘 잘 모르는 문외한이거나 사기꾼이다.

따뜻함도 달달함도 없는, 싸늘하고 천박한 정치판에 좋은 사람이 머무는 이유, 혹은 정치를 하게 만든 근원적 추동으로서의 에로스가 무엇인가. 예컨대 까마귀 노는 판에 왜 백로가 기어코 끼어드는가. 요컨대 왜 안철수는 정치를 하는가.

내가 보기에, 바로잡고 치료하고 싶은 욕망이다. 안철수에게 대한민국 체제는 감염된 프로그램이자 치료해야할 환자다. 오류를 일으키는 악성코드와 바이러스를 잡지 않고, 병들고 다쳐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치료하지 않고서는 참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안철수는 여전히 프로그래머이자 의사다. 안철수는 양비론 아니다. 다만 알고리즘과 의학엔 내편/네편이 없을 뿐이다. 안철수의 '공정성장'도 알고리즘적 질서이지 노동자 편들기는 아니다.

디폴트(default)는 경제학에서는 채무불이행을 의미하지만, 프로그램에서는 사용자의 별도의 명령이 없는 상태,즉 문외한이 건드려 엉망진창 되기 전의 상태, 초기값이 적용된 어쩌면 최적화된 상태다. 포맷하고 OS 새로 깔아도 디폴트다.

의학에서 디폴트는 생리학이다. 의학은 생리학-병리학-치료학으로 나눠져 있다. 건강한 상태를 연구하는 게 생리학, 건강한 상태와 달라진 상태를 연구하는 게 병리학, 달라진 상태를 원래 상태로 돌리는 게 치료학이다. 즉 의학에서 디폴트는 건강한 상태다.

또한 기독교의 디폴트는 신이 창조한 원래의 완전한 세상이다. 이 상태로의 회복은 홍수와 불의 심판 등의 쇼크를 통해 가능해진다. 타락-쇼크(홍수 심판)-재창조로 이어지는 구약의 홍수 신화가 그렇고, 신약의 말세-쇼크(불 심판)-신천지 신화가 그렇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디폴트는 적자생존, 약육강식, 신자유주의적 야만으로 돌아가게 된다. 기존의 체제를 파괴하면 백지상태에서 다시 시작되는 게 아니라 견제장치조차 없어진 더 야만적이고 가혹한 체제로 강제이행하게 된다.

게임으로 치자면 디폴트-다시시작이 아니라 난이도 상승 패치를 강제로 받게 된다. 예컨대 이라크 전쟁은 IS를 낳았고, IMF를 통해 재벌만 더 부자가 되었다. 기존 구조가 해체된 자리는 가능성의 터전이 아니라 무덤 옆의 콜로세움이기 때문이다.

나오미 클레인이 <쇼크 독트린>에서 잘 설명한 것처럼, 이라크전쟁과 IMF라는 '쇼크'는 기존 체제보다 더 가혹한 '신자유주의'라는 체제를 깔기 위한 포맷이자 백지화에 불과했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를 "재난 자본주의"라 불렀다.

1982년, 신자유주의자 밀턴 프리드먼은 이렇게 쇼크 독트린을 요약했다: "오직 위기만이 진짜 변화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위기가 발생하면 그동안 방치되었던 사상에 근거를 둔 조치를 취하게 된다." 여기서 "그동안 방치되었던 사상"이 신자유주의다.

요컨대, '쇼크(위기, 충격)로 판을 흔들어(혹은 흔들리면), 혼란을 틈타 신자유주의를 도입해서, 무한경쟁을 통해 적자생존시킨다'는 게 신자유주의 교리이자, 쇼크 독트린이다. 쇼크 독트린은 좌우를 막론한다. 공산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슬라보예 지젝,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쇼크(큰 변화, 큰 깨어남)라는 간교한 궤변으로 트럼프를 지지했다.

내가 보기에 지금 추세라면 다음 대통령은 안철수다. 이게 기대되기도 하지만 걱정스럽기도 하다. '프로그래머'이자 '의사'인 안철수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무의식, 그 무의식에 '디폴트에 대한 긍정'이 있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디폴트에 대한 무의식의 긍정은 '다 부수고 처음부터 새로', '쇼크를 통한 신체제 건설'이라는 식의 쇼크 독트린, 충격요법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철수의 연설이나 글을 검토해봤는데, 아직은 모르겠다. 여러 생각이 혼재되어 있었다.

누군가의 생각은 극한의 상황에서만 정립된다. 최악과 차악 사이의 고통스런 선택에서 생각은 정립된다.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에서 강화하든 변절하든 신념으로 정립된다. 노무현도 대통령으로서 회피할 수 없었던 고통스런 선택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자로 정체성을 확립한 것이다.

시련 없이 살아온 사람의 생각은, 결국 자기 생각이 아니라 듣거나 읽어서 외우고 다니는 생각이다. 자아에 달라붙지 않고 부유하는 생각이다. 달라붙지 않았기에 명료하지 않고 부유하기에 설사 모순이라도 상관없는 생각이다.

안철수에게는 아직 극한의 시련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아직 자기 생각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것 같다. 어떤 계기만 생기면 언제라도 신자유주의로 정립될 수 있는 상태로 나는 느꼈다.

노무현도 처음부터 신자유주의자는 아니었다. 그저 리영희 선생의 평가처럼 무식할 뿐이었다. 하지만 노무현의 무의식엔 쇼크 독트린의 맹아가 있었다. 그 무의식이 밖으로 표출될 수 있도록 삼성이나 김현종 같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사상적 틀과 통로를 만들어주자 노무현은 열렬한 신자유주의자가 되어 버렸다.

쇼크를 통해 판을 재편해야 한다는 무의식이 노무현의 승부수, 즉 신자유주의, 재신임 투표, 사법시험 폐지, 한미FTA, 대연정, 자살 등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를테면 김현종과 삼성은 노무현을 타락시킨 뱀이자 노무현의 정체성을 확립시켜준 스승이다.

만약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어, 회피할 수 없는 시련의 순간이 닥쳤을 때, 누군가 굳건히 안철수를 잡아줬으면 좋겠다. 안철수에게 누군가 말해줬으면 좋겠다. 디폴트를 긍정하지 말라고. 신자유주의는 아니라고. 인간은 '충격과 공포', '경쟁과 우위'가 아니라 '배려와 소통', '여유와 정의'로 진보하는 것이라고.

덧글

  • 피바다 대구 2017/02/13 18:39 # 답글

    전라도를 위한다면서 대통령은 경상도 사람인 자기가 되어야 한다는 게 안철수의 궤변이죠.
    전라도 사람이 대통령이 되도록 도와주면 안됩니까?
  • 나인테일 2017/02/13 22:38 # 답글

    IMF 구제금융 받으라고 강요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애초에 파산을 안 하면 IMF도 안 찾아와요. 파산한 경제는 신자유주의 운운하기 전에 그냥 망한거고요.
  • 과객 2017/02/14 08:15 # 삭제

    애초에 왜 파산했는지를 알면 이런 멍청한 댓글 못달지 말입니다.
  • 나인테일 2017/02/14 12:45 #

    갓쏘오련이 파산한건 다 신자유주으 반동노무새끼 고르바초프 때문이죠. 갓논리에 부랄을 탁 치고 갑니다.
  • 과객 2017/02/15 08:03 # 삭제

    부랄이 뭔 죕니까?
    든 게 없는 머리를 탓해야지, 허구헌 날 부랄만 주물럭거리고 있으면 뭐 나아지나요?
  • 과객 2017/02/14 08:11 # 삭제 답글

    이런 부분이 안철수에 대한 불안감이죠.
    정치판에 들어서서 어느정도 사회화(?)된 듯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찜찜하고요.
    그래, 당분간은 다당제 틀을 유지하는 데 힘쓰면서 더 변화했으면 싶기는 한데,
    그럴 경우 문재인이 대통령 되는 꼴을 봐야 한다는 게 문제고...
    어쨌건 박근혜를 쫓아내도 제대로 된 방향을 잡기까지 꽤 시간이 걸릴 거 같아 보이네요.
  • 범인 2017/03/06 18:17 # 삭제 답글

    '시련 없이 살아온 사람은 자기 생각이 없고 다른데서 듣거나 읽어서 습득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 얘기가 잘 이해가 안 되네요. 정치적 시련, 정확히 말해 정치적 경험을 얘기하신 거라면 이해가 되긴 합니다만. 직접경험으로 얻은 지식과 책 같은 간접경험으로 얻은 지식의 차이를 얘기하신 거라면 이해가 됩니다. 안철수가 정치경력이 짧으니까요. 그러나 정치와 상관 없는 영역에서의 시련을 겪었는지의 여부에 따라 정치에서의 생각이 결정되진 않을 거 같습니다. 극한의 시련이 없었다는 건 어떤 근거로 판단하셨는지와 절대적 평가인지 다른 후보들과의 상대적 평가인지도 궁금하네요.
  • 범인 2017/03/06 18:24 # 삭제 답글

    제가 생각하는 안철수의 불안요소는..
    님께서 비유하신 표현을 빌리면 백로가 까마귀떼를 잘 통솔할 수 있을까입니다.
    안철수는 도덕덕으로도 깨끗해 보이고 정책 결정에 있어서도 능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천재라도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의 속마음, 사고의 생리를 이해하는 건 어려워 보입니다. 안철수는 다른 일반 정치인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입니다.
    정치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안철수가 대다수의 까마귀 정치인들을 컨트롤할 스킬이 있을지가 우려가 되는 부분입니다.
  • 진정한 국민 2017/04/06 19:47 # 삭제 답글

    꿈깨세요 안철수 대통령 안됩니다.안철수는 힐러리꼴 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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