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순과 페미니즘, 노예가된 남자들 1/n

▲ '힘쎈여자 도봉순' 포스터. JTBC 제공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은 페미니즘에 여성환타지를 접목한 드라마이다. 모계유전, 모권가정, 여성중심사회, 여성영웅, 강한 엄마/찌질한 아빠, 남성은 가해자/여성은 피해자, 남성은 지배자/왕자님/아이/일꾼 중 하나라는 프레임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공교롭게도 <도봉순>에 출연하고 있는 심해진이 과거에 출연했던 <안녕 프란체스카>도 비슷한 페미니즘 계열의 시트콤이었다. 인물관계 설정은 물론이고 에피소드까지 페미니즘적이다. <도봉순>은 1회밖에 못 봤고 <프란체스카>도 몇 회 정도만 봤다. 내가 본 범위 내에서 분석한 것이니 틀린 판단일 수도 있지만 아마 맞을 것이다. 흔한 레퍼토리니까.

하여간 이들이 공유하는 코드를 대강 '문화적 페미니즘'이라고 하는데, 여자 일베인 메갈리아의 어원이 된 <이갈리아의 딸들>도 같은 계통이다. 미국에서 문화적 페미니즘이 하위문화 형성에 나선 시기는 대략 1970년대 후반이다. 남성적 가부장적 체제를 문화로써 깨부수겠다는 것이다. 돈키호테가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해 공격했던 것처럼, 페미니스트들은 지금도 여전히 가부장적 체제라는 '환영'을 향해 돌격중이다.

왜 환영인가? 문명화된 현대국가에는 여성차별을 꾀하며 양성평등 원칙을 거부하는 거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있어봐야 미약한 벌레 정도에 불과하다. 심지어 일베충조차 그 주장을 분석해보면 '여자를 차별하자'가 아니라 '남자에 대한 역차별'을 문제 삼는 수준이 대다수다. 실제로 페미니즘이 제기된 이후로 별다른 저항 없이 모든 차별적 제도와 절차는 즉각적이고 순차적으로 철폐되었다. 에스테 빌라(Esther Vilar)는 이렇게 말했다:

"그녀들의 투쟁에 대한 도움은 예외스럽다 할 만큼 언제나 남성으로부터 왔지만, 그녀들은 남성에게 핍박받고 있다는 망상 속에 살기 때문에 남성이 양보해 준 것을 자신들이 강하기 때문으로 오해해 더욱더 그들을 향해 외쳐댔다. 그랬는데도 아무도 그녀들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뉴욕 타임스>에서 <뉴스위크>에 이르기까지, 키신저에서 맥거번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여성해방에 찬동했다. 단 한 명의 남자도 그것에 대항하는 데모를 하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그녀들의 데모를 반대하지 않았다." (길들이는 여자들, 길들여진 남자들, 228쪽)

여성 운동은 좌초되었다. 억울한 여성의 역사라는 것은 허구였고, 허구로는 어떠한 반란도 야기시킬 수 없다." (같은책, 233쪽)


페미니즘 문학의 기원인 <인형의 집>도 남자인 헨릭 입센(Henrik Ibsen)이 썼다. 인형의 집이 처음 공연되었을 때 충격을 받은 것도 여자가 아니라 남자들이었다.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잘못 생각한 입센은 <인형의 집>을 씀으로써 모든 여성을 위한 독립 선언을 시도했다. 그러나 1880년에 있었던 그 연극의 처녀 공연은 남성에게만 충격을 주었을 뿐이다. 그들은 여성에게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기 위해 투쟁할 것을 더욱 굳게 맹세했다." (같은책, 42쪽)


외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여자를 억압하려는 가부장적 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1948년 공포된 '대한민국 제헌 헌법'부터 이미 여성의 참정권은 완전히 보장되었고, 남녀평등을 명시했다. "제8조 모든 국민은 법률 앞에 평등이며 성별,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이후로도 여성이 원하면 즉각 모든 게 성취되었다.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군복무 면제처럼 사실은 여성에게 특혜인 경우였다. 에스테 빌라의 말처럼 "여성의 해방은 특권으로부터의 해방"이었기에 여성 스스로 해방되길 거부했다.

혹은 호주제처럼 실질적인 차별이 아니라 명목상의 사소한 차별임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폐지하면 가별편제라는 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경우에 불과했다. 즉 폐지에 따른 손실은 막대한데 이득은 사소했던 것이다. 하지만 호주제는 어느 순간부터 가부장제의 거인으로 공격당했고 그나마 이미 폐지된 지 오래다.

실제로 호주제가 폐지되어 피해를 입었다는 남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남성에게 이득을 주는 제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호주제는 출산하지 않는 남성에게 가족이라는 짐을 지우기 위해 체제가 고안한 굴레이자 장치였지 남성이 원하는 쾌락이나 특권이 아니었다.

명목상의 차별도 차별이라고? 그럼 남성에 대한 수많은 명목상의 차별도 폐지되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심지어 병역은 명목뿐 아니라 실질적인 차별이기까지 하니 그냥 두어선 안될 것이다. 동의 하나?

법에는 법철학이 있고 과거의 법철학은 남녀를 구분하는 성별분별제를 채택했다. 이 당시에는 남성에 대한 차별과 여성에 대한 차별 둘 다 법과 제도상에 존재했지만, 지금은 여성에 대한 차별은 대부분 사라졌고 남성에 대한 차별만 그대로 남아 있다. 이건 모순이고 불의하다. 더구나 병역과 관련해 헌법소원도 여러 번 있었지만 헌재는 별 희한한 궤변으로 번번이 정당화 시켰다.

모순은 헌법에도 있다. 성별차별을 금지하는 헌법11조와, 모성보호를 명시한 헌법37조,여자의 근로를 특별히 보호하는 헌법32조는 모순임에도 방치되고 있다. 즉 우리나라의 헌법과 법률은 남성을 당당히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대한민국 체제가 거인이라면 이 거인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을 억압하는 거인이다.

이처럼 가부장적 체제가 환영임이 밝혀지자 페미니스트는 "유리천장"이란 새로운 거인을 들고 나왔다. 이 거인은 마치 "유리"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심지어 '환영'조차도 아니다. 아무 근거 없이 그저 믿어지는 것이다. 논리의 근거는 날조로 마련되었다. 일단 믿어야 논리 전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은 일종의 종교다.

물론 차별이 사라졌다고 격차조차 사라진 건 아니다. 하지만 남녀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는 빈부격차와 같은 종류의 것이다. 격차가 자연스럽게 줄어들면 바람직하지만 강제로 줄이는 건 잘못이다. 예컨대 <성의 정치>를 쓴 실비안느 아가젠스키(Sylviane Agacinski)의 주장처럼 성비에 따라 여성 50%할당제가 정당하다면, 소득하위 99%를 국가 요직의 99%에 할당하는 것도 정당하다. 내신 9등급과 내신 1등급을 같은 수로 서울대에 합격시키는 것도 정당하다. 이건 정의가 아니라 불의다. 능력과 노력과 조건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남녀 사이의 격차는 물고기의 물, 새의 하늘과 같은 종류의 격차다.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은 "남자가 없는 여자는 자전거 없는 물고기와 같다."고 했고, 존 그레이(John Gray)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고 했다. 모두 남녀를 분별하는 입장이다. 남녀는 애초에 필요하고 욕망하는 대상이 다르다. 평등해야 한다고 적당히 평균내어 물고기를 늪에서 살게 하고, 새를 땅 위에서 걷게 하는 게 올바른 해법일까? 이런 잘못된 페미니즘적 해법을 소위 "성별분별 철폐"라고 부른다. 사실상 '중성화전략'이다. 성정치의 파시즘이다.

단지 '여성이라서 대통령으로 뽑겠다'가 박근혜를 지지하는 이유 1위였고, 5개 정당 중 2개의 당대표가 여성인 추미애, 심상정인 우리나라에서 "여혐"이니, "유리천장"이니 다 헛소리다. 시민을 홀리는 거짓말이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쉽게 더 많은 특권과 특혜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불과하다. 나는 이런 특권에 반대한다. 헌법 11조에 명시된 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의 남성은 로마 노예와 비슷하다. 나름대로 전문적 지식과 능력도 있고 어느 정도 자유도 있지만 신분은 노예다. 로마 노예와는 달리 노예의 신분인 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으니 더 멍청한 셈이다. 아니 대한민국 체제가 로마보다 좀 더 교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등바등 살아가는 남성을 보면 연민의 정을 느낀다. 저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데, 어쩌다 노예처럼 살게 된 것일까. <프란체스카>의 여자 흡혈귀들에게 착취당하는 이두일이 대한민국 남성과 닮았다.

앞서 언급한 호주제와 마찬가지로 결혼도 남성을 가족에 얽어매기 위해 체제가 고안한 굴레이다. 남자는 결혼하지 않으면 더 풍족하고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다. 실제로 통계적으로도 결혼하는 순간 남자의 삶의 만족도는 급락한다. 결혼은 남자가 자기 삶을 버리고 여자와 아이를 위해 살아가겠다는 계약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결혼은 남성에게 그다지 좋은 제도가 아니다. "너희들은 결혼 하지 마" 이게 유부남이 미혼남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충고가 된 지 오래다.

"우주의 모든 비밀의 열쇠를 손에 쥐고도 남성은 자발적으로 여성의 수준으로 추락하여 그녀의 비위를 맞춘다. 존재 가능한 것들을 창조하도록 운명지어진 그들의 정신, 힘, 상상력을 그들은 기존에 있는 것들을 보존하고 개선하는 데 투자한다." (같은책, 67)

"유감스럽게도 모든 사물에 관해 사고할 능력과 의도를 가진 남성은 여성에 관한 한 모든 것을 터부시한다. 가장 끔찍한 일은 그 터부들이 대단히 효험이 있기 때문에 이젠 아무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성은 그것에 대해 진정으로 생각해 보지 않은 채 <여성>의 전쟁을 하고, <여성>의 아이를 만들고, <여성>의 도시를 세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여성은 더욱 게을러지고 어리석어지며 더 높은 물질적 욕구를 갖게 된다. 그리고 점점 더 부유해지는 것이다." (같은책, 70)


남자가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계기는 대개 비슷하다. 이대로는 정말 답이 없어서, 여자의 관점에서 보면 뭔가 새로운 해법이나 단초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로 시작한다. 처음에는 페미니즘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반추하고 성찰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좀더 깊이 공부하다보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단 페미니즘은 독창적이고 독립적인 학문체계가 없다. 논문으로 치면 리뷰논문만으로 이루어져있다. 기존 학문(남자들이 만든)을 여자에게 유리하게 짜깁기하고 여자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게 고작이다. 이 재해석은 '새로운 관점'이 아니라 편협하고 자의적이라는 점에서 '나쁜 관점'에 불과하다. 또한 학문으로서의 엄정함과 엄밀함이 없다. 주장은 난무하는데 탄탄한 근거는 없다.

1949년 출간된 <제2의 성>을 쓴 시몬 드 보부아르나, 베티 프리던, 케이트 질레트 등은 물론이고, 뤼스 이리가라이(Luce Irigaray)조차 새로울 게 없다. 문체는 다소 난해하지만 내용은 단순하고 익숙하다. 문체의 난해함도 "운동권 사투리"처럼 포스트모더니즘 사투리이거나 번역 과정의 부작용일 뿐이다. 무슨 고차원적이고 난해한 개념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아... 페미니즘은 학문이 아니구나. 페미니즘은 리뷰논문으로만 이루어진 유사학문이고, 세탁된 남성 혐오(헤이트 스피치)고 여성용 자기계발서구나. 다른 학문에 얹혀가는 기생(寄生)학문이고, 남편을 대신해 정부, 자본, 권력에 빌붙으려 꼬리 치는 기생(妓生)학문이구나... 생각해보면 처음에 페미니즘이 주었다고 생각했던 반추와 성찰의 기능도 사실은 페미니즘을 알기 전에 이미 내가 가지고 있던 익숙한 것이었다. 익숙한 얘기이니 고개를 끄덕거렸을 뿐이다.

이미 페미니즘은 종교화 되었기에 핵심교리를 신비주의로 가린다. 마치 기독교가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하게 정의하지 않는 것처럼 페미니스트도 '성평등'을 모호한 상태로 남겨둔다. 전가의 보도처럼 성평등을 말하지만 그 평등의 의미를 이치에 맞게 합리적으로 제시하는 페미니스트는 없다. 절대적 평등인지 상대적 평등인지 정도의 기본적인 질문도 온갖 궤변으로 회피한다. 그저 여성이 요구하면 사회는 들어줘야한다는 떼에 불과하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feminism)이다. 페미니즘은 양성평등주의가 아니라 여성주의다. 자유주의가 자유를, 민주주의가 민주를, 지역주의가 지역을 최우선 가치로 지향하듯 페미니즘은 여성(femina)이라는 가치를 우선적으로 지향한다. 그저 은폐된 성별주의이고 여성패권주의이자 여성우월주의일 뿐이다. 그래서 페미니즘 역시 '사이비'다. 우리가 잘못해 성안에 들인 트로이의 목마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성평등은 물론이고, 자유와 평등, 정의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소중하게 여긴다. 내가 좋은 사람, 상식적이고 교양 있는 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또한 여성과 남성을 완전히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데 페미니즘은 전혀 필요 없었다. 현대 여권의 확장은 보편적 인권의식 때문이지 페미니즘 때문이 아니다.

덧글

  • 기묘한 4월 2017/03/14 03:54 # 답글

    첫 문단(전제)은 페미니즘이 아니라 여성우월주의입니다. 글쓴이가 페미니즘을 여성우월주의로 잘못 알고있군요. 1948년 이후 가부장제가 이 사회에서 사라졌다는 부분은 참.... 1948년부터 울사회가 민주공화국이었다고 믿을 분이네.
  • 정상인 2017/03/22 15:32 # 삭제

    글의 몇몇부분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이 있는건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 좋은 내용의 글인건 맞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페미니즘을 철회해야 한다는 이론도 높아지고 있는건 사실이고 애초에 성적 평등이 남과여라는 특이한 생체매커니즘은 인식하지 않은채 그저 사람과사람으로서만 평등하게 기준을 세우고 있으니까요 그 어떤것도 정확한 답이라는건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성평등화 운동이 결과적으로 역성차별적 결과로 나타난건 설명 안해도 만연해 있는 현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성차별을 받고 있다는거 부정하는건 아닙니다.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점이죠.) 몇몇 표현에서 글쓴이님의 생각이 좀 과하게 표현된부분이 없지않아 있지만 큰 틀의 주제만큼은 깊게 생각해 봐야 될 내용이라 생각됩니다.
  • ㅁㅁ 2017/03/19 09:30 # 삭제 답글

    혹시 페미니즘 신자신가요? 역겹지만 종교의 자유는 인정하는게 우리 헌법이니 인정해야겠죠.
  • ㅁㅁ 2017/03/19 09:31 # 삭제

    위에 기묘한 신자분께 다는 답글인데 새로 달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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