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로 드러난 노무현 정권의 이라크 추가파병 논리 1/n

지난 2004년 8월 3일 아침, 노무현 정권은 3000여명의 자이툰 부대를 국민 몰래 전세기를 통해 이라크로 파병했다. 당시 상황은, 우리나라는 3차례에 걸쳐 650여명의 서희·제마 부대를 이미 이라크에 파병했기에 동맹국으로서 미국에 대한 예우를 해 줄만큼 해 준 상태였고, 세계 각국은 이라크에서 철수를 결정하던 시기였으며, 이라크 무장단체에 의해 김선일 씨가 살해당했고, 피살 직후 여론조사에서 파병반대가 70%에 육박했기에, 우리나라가 더 이상 파병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충분히 받아들여질 여건이 마련되어 있던 시기였다. 1차파병은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추가파병은 상황이 달랐다는 말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추가'파병이다. 추가파병은 심지어 부시의 첫번째 푸들인 영국의 블레어조차 시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은 끝내 추가파병을 단행했다. 이 추가파병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가의 의무는 물론이고, 주권국가로서의 최소한의 자존감마저 내팽개친 것이다. 

추가파병 당시 정부는 자이툰 부대의 안전을 구실로 언론에 엠바고(보도유예)를 요청했다. 하지만 출국 사실조차 보도하지 말라는 것이었으니 이는 사실상 '보도 금지' 조치였다. 이런 조치는 군사정권에서나 가능한 일인 것 같으나 <한겨레>나 <경향>조차 순순히 따랐다. 당시 자이툰 부대의 출국 사실을 보도한 언론은 , <오마이뉴스>, <민중의소리>밖에 없었다. <알자지라 방송>과 등 외국 언론들은 "한국이 이라크 파병 관련 보도통제를 각 언론사에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며 "이러한 강격한 보도통제는 미국 주도로 이라크 전쟁에 파병한 30여 개국 가운데 한국만이 유일하다"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은 국민이 반대해 출국 사실조차 떳떳이 알리지 못할 정도로 명분 없는 추가파병을 왜 결정한 것일까. 당시 유포되었던 추가파병의 구실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고육지책이다.
- 미국의 다양한 보복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1.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고육지책이다"라는 주장부터 보자.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말은 이라크파병을 하지 않으면 부시 미정부가 북한에 폭격을 할지도 모른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따라서 이는 노무현 정권이 북폭을 막기위해 이라크 파병과 북핵문제를 연계시켰다는 의미이다. 참여정부 출범 후 2년간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이진이 지은 <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2005)에도 이라크 파병의 가장 큰 이유가 북폭에 대한 고려였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는 국제 정치에 대해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2003년 9월 참여정부가 어설프게 '북핵문제'와 '파병문제' 를 연계시키는 척 하려다, "동맹을 그렇게 다뤄서는 안된다"고 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이 한 마디로 거절하자( 윤외교 “북핵-파병 연계”…파월 분노, 한겨레, 2003.10.15), 노무현은 "파병과 북핵문제를 연계시키지 않겠다"는 친서까지 보낸 적이 있다( 국회, 노대통령 파병 친서전달 확인, SBS, 2003.10.21).

미국을 상대로 이런 식의 협상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북핵문제는 미국도 나름대로 마음 독하게 먹고 진행하고 있는 사안이고, 실제 북한에 대한 폭격을 계획했을 정도로 미국에게 중요한 문제인데 몇 천 명 파병 같은 것에 연계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것은 노무현 정권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단지 그런 것(북핵-파병 연계)처럼 국민들에게 보이고 싶었을 뿐이다. 국제적인 외교의 상식을 어기면서까지 그들이 원한 것은 단지 "이미지" 였던 셈이다. 이처럼 추가파병과 북핵은 전혀 연계되어 있지 않은 별개의 사안이었다.

그렇다면 직접적으로 연계되지는 않았더라도 한미동맹 관계를 확인시킴으로써 북폭 방지에 간접적인 도움이나마 될 가능성은 없었을까?

지난 2002년 1월에 미국 부시가 이라크·이란·북한을 반테러 전쟁의 제2단계 표적으로 지명하면서 '악의 축'(axis of evil) 운운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북한은 극렬하게 반발했고 한반도엔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그렇다면 이 때 김대중 정권은 한미동맹을 외치며 사태를 진정시켰을까? 천만에. 김대중 정권은 바로 반대성명을 발표했고, 전국적으로 반미감정이 고조되는 상황을 방치하였다. 심지어 부시가 방한했을 때 한국인들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그 흔한 성조기 하나 거리에 걸지 않았고, 대규모 환영행사는커녕 부시의 숙소가 어딘지도 그가 떠난 후에나 알려질 정도로 부시의 방한은 초라하게 마무리되었다.

또 부시 정부가 "제한적인 북폭"이나, "맞춤형 봉쇄"등을 말했을 때, 김대중은 TV 대담을 통해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규탄했다:

"봉쇄정책을 해선 안 된다, 그러면 전쟁으로 나갈 위험이 있고 봉쇄정책을 해서 성공한 적이 없다, 과거 소련·동구라파·중국에 대해서 봉쇄정책을 했지만 어디서도 성공을 못했고 쿠바에 대해서는 지금 50년간 봉쇄해도 바로 눈앞에 있는 조그만 점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을 봉쇄해봤자 결국 옆에 러시아가 있고 중국이 지원하는데 어떻게 해서 성공할 수 있느냐? 그건 효과적이지도 않고 결국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KBS <일요스페셜> 김대중 전 대통령 특별인터뷰 중, 2003.6.15)

그러자 그 다음날 미정부는 "그냥 해본 말이었다"라며 물러섰고, 그 후 더 이상 비슷한 얘기조차 꺼내지 않았다. 이처럼 명분과 논리를 확보하고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외교적 대응을 하는 것, 이게 제대로된 약소국의 외교다. 굴미로 따지자면 김대중 정권도 노무현 정권 못지않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김대중 정권은 유능했으나 노무현 정권은 무능했다는 것뿐이다. 


대담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 (KBS)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이 다소 무능하긴 했지만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 북폭을 막고자하는 진정성은 있었을까? 만약 이 구실에 진정성이 있었다면 노무현 정권은 추가파병과는 별도로 북폭을 막기 위해 북한을 설득하는 동시에 남북한의 공조를 강화하는 조치들을 취하고 있었어야 했다. 그렇다면 보자. 노무현 정권의 북핵 연계 주장이 얼마나 진정성 없는 가증스런 기만이었는지.

다음은 2003년 6월 15일 TV 특별 대담을 통해 김대중이 노무현에게 가르쳐준 북핵과 남북긴장완화를 위한 원칙이다:

"남북관계가 잘 안되면 과거 냉전시대와 같이 우리는 모든 것을 미국에 매달려야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94년 핵문제 해결을 위한 제네바 합의 때, 우리는 제네바 회의 탁자에도 못 가보고 나중에 경수로에 대해서만 약 40억불을 부담하지 않았습니까. 아마 세계 외교사에서도 이런 안타까운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남북관계가 나빠서 북한이 우리를 배척하는 바람에 우리가 그 자리에 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난번에 노 대통령한테도 말했습니다만 앞으로 남북관계는 대미, 대중 외교 등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갖기 위해서라도, 우리 민족끼리 잘 살고 평화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남북관계를 더 이상 훼손시켜도 안되고 반드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KBS <일요스페셜> 김대중 전 대통령 특별인터뷰 중, 2003.6.15)

남북관계 잘 안되면 냉전시대처럼 모든 것을 미국에 매달려야 한다는 것은, 김대중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남북이 서로 화해와 협력의 길을 나아갈 때, 절대로 한반도에서 전쟁은 일어날 수 없다. 하지만 북한 김정일의 방한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그 가능성도 여러 가지 경로로 점쳐지고 있던 시기에, 김대중도 김정일의 답방을 말하고 있던 시기에(김정일 답방해야, mbn, 2004.06.15), 노무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는 한국의 대통령을 만났을 때 북핵 문제 관련 발언이 북한의 입지에 도움이 되는지의 여부를 계산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정부가 그같은 북한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남북정상회담을 서두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정상회담이나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은 북측이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자유롭게 남북관계에 대해 대화를 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고 본다.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해 북한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이나 정상회담 개최를 기대하거나 종용하기에는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 (盧,"남북정상 만남 아직은 시기상조", 노컷뉴스, 2004.07.22)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추가파병을 해야 한다더니 북한을 설득하고 남북 긴장관계를 완화할 좋은 기회인 김정일의 답방은 시기상조라고 한다. 누가 이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 있나?

아마도 노무현은 이라크에 추가파병을 하려면 남북의 긴장관계가 어느 정도 선에서 유지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파병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주로 드는 근거가 "북폭의 위험" 때문이었으니까. 따라서 정상회담이나 김정일의 답방 등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때 성사되지 못한 남북정상회담은 3년 후에나 가능했다.
 

2007.10.2. 남북 정상회담 첫날 두 정상의 첫 만남은 12분여 만에 끝났다.
두 정상은 처음 악수를 나눌 때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그렇다면 노무현은 왜 한편으로는 미국의 대북제재를 막은 것이 김대중의 "원칙에 입각한 타당한 논리와 집요한 설득" 이었다는 사실을 끝까지 숨기고, 김정일의 답방까지 시기상조라고 치부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북폭을 막기위해 추가파병을 해야한다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였던 것일까? 왜 없는 이유를 만들어내서라도 추가파병을 단행해야 했던 것일까?

노무현 정권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던 윤영관은  "그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의혹을 품었지만 이라크 파병 결정 이후 한미간의 의혹이 해소되고 상호간에 신뢰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며 "지금은 상당히 정상화됐으며 특히 대통령의 미국 방문 뒤 경제와 국민들의 심리가 안정됐다"고 주장했다. ("DJ정부 때 한미동맹 문제 많았다. 미, '파병'으로 노무현에 의심 풀어", 오마이뉴스, 2003.6.4)

즉 노 대통령의 후보 시절 '자주성 발언'으로 생겼던 미국의 의심을 그대로 방치했으면, 가뜩이나 김대중 정부 때 햇볕정책 추진으로 악화됐던 한미관계가 더욱 최악으로 갈 뻔 했으나 이라크 파병으로 동맹관계를 회복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부시 정부(미국이 아니다. 이전 클린턴 정부와의 관계는 좋았다)와의 관계가 껄끄러웠던 김대중 정권에서 우리나라가 경제회복과 남북긴장 완화에 성공한 것을 감안했을 때, 또 김대중 정권과 부시 정부의 사이가 틀어진 이유가 우리나라의 국익을 위한 것이었음을 고려했을 때, 노무현의 "동맹관계 회복"은 오직 노무현 정권을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라크 파병을 "노무현-부시 동맹"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게 본질이다. 추가파병은 결과적으로 노무현의 정권보장과 부시의 재선을 위한 더러운 협잡,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마도 친미 외교라인과 부시 정부의 엄포 속에서 노무현의 판단력이 흐려졌을 것이다. 미리 겁을 먹었기에 합리적인 판단도 불가능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부시에게 있어 노련한 김대중에 비해 노무현은 참으로 다루기 쉬운 "easy man" 이었던 것이다. 
노무현-부시 동맹을 위해 처참하게 살해된 김선일


그렇다면 노무현은 왜 북핵 연계라는 거짓말을 한 것일까? 북핵 연계 주장이 나왔던 2003년 10월은 국회의원 선거를 몇 달 앞둔 시기였다. 총선을 앞두고 지지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나름의 구실이 필요했기에 "북핵연계"라는 이유가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2004년 4월 15일에 치뤄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탄핵역풍을 타고 압승을 거두자, 길게 끌어오던 추가파병 건을 속전속결로 처리해, 2004년 8월 3일 끝내 추가파병을 단행한 것이다. 

2. "미국의 다양한 보복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라는 주장을 보자. 

파병을 하지 않았을 때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 보복을 하고 우리나라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를 예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미 이라크 파병을 철회한 다른 나라를 통해 주장의 신빙성을 확인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역사엔 가정이 없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과거는 역사이자 기록이라 직접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 보자. 파병을 거부하거나 철회한 나라들 참 많다. 그래서 그 나라들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단 하나의 예라도 제시할 수 있는 사람 있나?

우리나라의 이라크 철군은 2008년 12월 20일에나 비로소 이루어졌다. 하지만 미국의 최대 동맹국인 일본은 2006년 6월 이라크에서 모든 지상병력을 철군했다. 그래서 미국이 일본에 어떤 보복을 했나? 

또 스페인, 타이, 노르웨이, 온두라스, 도미니카 공화국, 필리핀, 뉴질랜드 등 2004년에만 11개국이 철군했고 2005년과 2006년 사이에 포르투갈, 몰도바, 이탈리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 10개국이 철군했다. 그래서 이들 나라에 미국이 어떤 보복을 했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대미 의존도가 17.7%에 불과한 우리나라는 30%에 육박한 일본을 제치고 미국과 영국에 이은 3번째 규모의 파병국이었다. 하지만 82%에 달하는 캐나다는 겨우 2명을 파병했고 70%에 달하는 맥시코는 아예 파병 자체를 거부했다. 그래서 미국이 어떤 보복을 했나?

지금 돌이켜 보면 "미국의 다양한 보복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라는 주장은 명백한 거짓말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부시 정부와의 관계를 조금 더 돈독하게 만들기 위해 너무 많은 댓가를 치뤘다. 전체적으로 손해보는 장사였고 잘못된 정책 결정이었다.

3. 만약 추가파병 당시 대통령이 김대중이었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먼저, 서희·제마 부대의 1차파병에 대해서는 국민의 지지를 전제로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중국 칭화대 강연 후 한 여학생이 한국이 이라크 파병을 한 이유를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첫째, 이라크 파병은 한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게 아니다. 국민 여론을 수렴하고 국회에서 결정한 것이다. 국민도 다수가 지지하고 있다. 둘째, 한국 정부가 이라크에 파병하는 것은 전투목적이 아니라 `재건'이 목적이다. 파괴된 시설 재건을 위한 것이다. 이라크 국민의 생활 개선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으로 될지 우려되는 측면도 있다. 여러분들도 많이 관심을 가져달라." (중국 방문한 DJ "한국민 다수가 이라크파병 지지", 오마이뉴스, 2004.7.3)

하지만 추가파병에 대한 견해는 다르다.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에서 신기남 의장, 천정배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국제적 협력관계 속에서 이라크 평화문제를 해결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미국을 중심으로 이라크 문제가 진행되고 있는데, 유엔을 중심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좋다"강조했다. 이같은 언급은 미국 부시정권의 일방주의 외교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이라크 추가파병에 신중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DJ "이라크문제, 미국 아닌 UN 중심으로 접근해야", 프레시안, 2004.6.1)

당연하게도 "북핵과의 연계", "미국의 보복" 운운하는 기만적인 내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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