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는 기껏해야 부조리한 친노 인기 강연자 1/n

강신주는 사이비 맞고, 그래서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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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글에서 이어지는 글이다.

자본주의를 타파해야 한다는 강신주이니 한미FTA 추진 등으로 자본주의를 강화한 신자유주의자 노무현을 엄청 비판 했겠지? 그래서 노무현과 강신주를 키워드로 검색해 봤다. 이게 강신주의 대답이다.

"현 정부보다 노무현 정부 때 훨씬 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분배가 이뤄졌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분배를 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정부가 이건희에게 의지하고 한·미 FTA를 지지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분배를 중요시하는 사회민주주의 역시 자본가의 돈이 없으면 분배를 할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자본가 그룹이 붕괴되면 같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회민주주의자는 결정적인 순간에 자본가의 손을 들 수밖에 없습니다. 마르크스가 <고타강령비판>에서 사회민주주의를 비판한 이유가 거기에 있지요." ( 사회민주주의, 노동자보다 자본가와 더 친해?, 오마이뉴스, 2011.03.09 )

강신주는 노무현의 한미FTA 도입마저도 자본가에 의존하는 사회구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살인마가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사회구조 탓이다"와 유사한 논법으로, 노무현과 참여정부라는 특정 주체, 즉 개인의 잘못을 사회 구조의 탓으로 돌린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강신주는 노숙자가 자립하지 못하는 이유는 수치(부끄러움)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치심은 정신이 살아있다는 증거, 중앙SUNDAY, 2012.04.08 ). 또 다른 강연에선 "남에게 뭔가를 기대하지 말고 스스스 자신을 구원하라"고 일갈한다. 순식간에 사회구조적 문제가 개인의 자기극복 문제로 환원되어 버렸다. 이는 노무현 개인의 잘못은 사회구조적 문제로 둔갑시켰던 것과 이율배반적이다. 

강신주 역시 노숙자가 양산되는 이유를 사회구조 때문으로 보고 있으니, 그렇다면 이유가 구조 때문이라면 그 해법도 당연히 구조에서 찾아야한다. 그런데 강신주는 왜 구조에서 원인을 찾으면서도 해법은 노숙자 개인에게서 찾는가. 반대로 개인이 자기 힘으로 구조적 문제를 극복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면, 왜 극복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노무현을 비판하지 않는가. 왜 강신주는 리영희 선생의 일갈처럼 '노무현의 실패는 노무현 개인이 무식해서 이용당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강신주는 노숙자에게는 엄격하지만 노무현에게는 따뜻하다. 심지어 노숙자가 구조 속의 최약자 중 하나라면 대통령은 구조를 지배하는 최강자 중 하나이다. 강신주에게선 "노무현이 잘한 건 노무현 때문, 노무현이 못한 건 조중동 때문"이라던 친노의 냄새가 난다.

또 강신주는 "자기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원래 별로 없다. 기껏해야 자존감을 가지라고 강신주가 이런 얘기를 꺼낸 것도 아니다. 강신주의 말은 맥락상 '당신의 소욕(所欲; 욕망, 본능)에 충실하라'는 의미이고 이는 대체로 철저한 개인주의자가 되거나 소비를 충동질하거나 기껏해야 웰빙 수준에 머물게 된다. 어느 경우도 자본주의 타파와는 상관없다. 진리를 사랑하라, 정의를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등에 비해 주로 반대의 맥락에서 사용되는 말이 바로 "자신을 사랑하라"이다.

강신주는 노골적으로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자본주의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긴다. 이는 얼핏 강신주가 추종하는 니체사상에서 벗어나 보인다. 왜냐하면 니체는 오히려 강자에 대한 질투에서 비롯된 원한감정(ressentiment)과 '노예의 도덕'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라는 거악을 타파하기 위해 소시민들의 원한감정을 모으고 있는 강신주를 니체는 당연히 비판했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이해가 된다. 니체에게 있어 주된 비판 대상은 제국주의 로마가 아니라 기독교와 신이었다. 그래서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것이다. 또한 니체는 같은 논리로 사회주의를 비판했다. 당연히 니체의 사상은 제국주의나 자본주의 타파에 기여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오히려 공고하게 만들 뿐이다. 관련 용어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로마 자본가
원한감정 원한감정
노예의 도덕 평등
기독교 사회주의
신(믿음-구원-천국) 진보(분배-해방-공산주의)

마찬가지로 강신주가 집중타격하고 싶은 대상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결국 진보주의이다. 강신주의 사상이 한 눈에 명료하게 이해되지 않고 종종 오인되는 이유는 본래 속셈을 숨기고 반자본주의라는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서두에 인용한 오마이뉴스 기사를 다시 읽어보면 그가 정말 공격하고 싶은 대상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임이 분명히 보일 것이다. 이는 기사 전체를 보면 더 확실해진다.

찾아보니 본심을 더 노골적으로 드러낸 기사도 있다( 차라리 복지 정책을 폐기해야, 경향신문, 2013.11.24 ) 기사에서 강신주가 결국 말하고 싶은 것은 국가의 '재분배'가 '수탈'한 양을 넘을 수는 없으니 사회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대중을 수탈하는 체제라는 것이다. 물론 "부자 증세를 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복지 정책을 폐기하라고."라며 마치 부자 증세에 의한 복지 정책이라면 반대하지 않는 것처럼 대중을 기만하는 꼼수도 잊지 않았다.

강신주는 마치 자유를 위해서는 무소유의 자급자족 생활이라도 감당할 것처럼 말하지만 이는 자본주의와 싸우고 있다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대응논리이자 알리바이일 뿐이다. 강신주는 자본주의라는 사회 구조를 변혁시킬 그 어떤 쓸 만한 대안도 내놓지 않는다. 사회민주주의도 안 되고 공산주의도 안 된다고 하더니 대안을 물으면 철학자에게 대안을 요구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래놓고 기껏 한다는 소리가 "냉장고를 없애자" 따위 무용무실한 빈말이다(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괴물, 냉장고, 경향신문, 2013.07.21 ). 강신주는 남에게는 느리게 살라고 하면서 정작 자신은 하루 2.5회 정도 강연을 7년 정도 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빠르게 살아야하지만 남은 느리게 살아야 한다? 역시 이율배반이다.

강신주가 일부 대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이유는 그가 자본권력에 대한 대중의 원한감정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동시에 기독교와 유사한 선악 이분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강신주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사탄이고, 세상은 사탄이 지배하는 곳이다. 이렇게 세상을 단순하게 만들어놓고 자신은 선지자의 역할을 맡는다. 강신주의 '자본주의/직접민주주의'의 관계는 기독교의 '실존/천국'의 관계다. 천국에 가기 위해 필요한 게 명백하고 과학적인 실천이 아니듯이 강신주의 직접민주주의로 가기위해 필요한 것도 기껏해야 냉장고 없애기 정도의 무의미한 실천이다. 그냥 하는 척이다. 천국이 정말로 있을 확률로 강신주의 '직접민주주의' 세상도 존재한다. 이쯤되면 철학이 아니라 신학이다. 그래서 강신주는 교회가 수시로 부흥회를 열듯 강연회을 연다. 

니체의 초인사상은 방향성이 없기에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다. 이를테면 날이 잘 선 도구로서의 칼이다. 따라서 초인을 입에 올리려면 처절할 정도로 자기를 객관화해야한다. 조금만 삐끗하면 괴물이나 독재자가 된다. 하지만 강신주의 사상엔 이런 객관화가 없다. 아전인수와 이율배반을 수시로 저지른다. 세상에 세모난 네모는 없다. 세모난 네모를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대중을 사리분간 못하는 우중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강신주는 어떻게 보면 박정희나 전두환만큼 "초인"스럽다.
결코 강신주는 "거리의 철학자"가 아니다. "거리"라는 수식이 붙으려면 최소한 그와 관련된 활동을 해야 한다. 예컨대 노무현이 "거리의 변호사"라고 불렸다면 그와 관련된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신주에겐 그런 게 없다. 강신주가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2003년 이후인데, 그 이후로 사회 부조리와 부정의에 대한 비판활동은 거의 없었다. 이른바 '이론'과 '실천' 중에서 '실천'이 전무하다. 시대의 문제 앞에 그저 침묵한 것이다. 그런 강신주가 실천에 나선 건 공교롭게도 노무현과 관련된 사건이다. 2009년 경 노무현에 대한 무리한 검찰조사를 중지하라는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는 전국 철학자 시국선언문, 노컷뉴스, 2009.06.11 )

강신주가 자기 생각을 피력하는 곳도 주로 방송, 강의실, 강당 등이다. 강의를 원하는 곳에 출강 나가 강의하고 강의료 받는 것은 "거리" 보다는 "생계"에 더 적합하다. 생계형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강신주는 거리와 상관없다는 말이다.

"철학자"라는 수식도 영 어색하다. 철학자의 최소 요건은 '사상의 견고함'과 '자기완결성'이다. 가능한 단단한 토대 위에 자기 사상을 견고하게 정립해야 하고, 최소한 자기 사상 내에서는 모순 없이 수미상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소크라테스는 독약까지 마셨다. 하지만 이미 여러 번 지적했듯이 강신주 사상은 견고함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고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이다. 이런 사람이 "거리의 철학자"라고? 어처구니가 없다.

내가 보기에 강신주는 기껏해야 친노 성향의 인기 강연자이다. 사이비인 점, 트로이의 목마(프락치)인 점, 자기 객관화가 안 된다는 점, 네가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성공은 내 덕, 실패는 네 탓 식의 이율배반도 딱 친노답다.

어떤 사람이 갑자기 뗬다면 물론 그 사람의 탁월함 때문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 당시의 지배구조(지배권력과 지배이념)가 그 사람을 낙점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지배권력은 자본가이고 지배이념은 자본주의이니 친자본주의적인 사람이 주로 뜨게 된다. 이번엔 강신주가 간택된 것뿐이다. 강신주가 주목을 받게 된 계기도 2011년 7월 6일에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CEO를 위한 추천도서로 지정하면서부터다( 삼성硏 'CEO가 휴가철 읽을 책' 17권 선정, 아주경제, 2011.07.06 ).
  1. 멘토 (내가 잘 아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이들이 시키는 건 대개 친자본적인 것이다. 열정, 긍정, 욕망, 자아발현 등의 코드를 적당히 버무리면 사실은 이용당하고 있지만 스스로는 주도적이라고 느끼는, 자발적이고 긍정적이고 확신에 찬 노예가 탄생한다.)
  2. 힐링 (시키는 대로 해도 대개 실패한다. 실패한 이들에겐 힐링이 필요하다)
  3. 독설 (반복된 실패에 무기력을 체화한 사람을 다시 충동질하기 위해선 보다 강력한 자극, 즉 독설이 필요하다)
  4. 구원 (독설로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구원하라"고 충동질한다. 이는 구조적 문제를 자기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 자기에게 최적화된 논리를 각자가 개발해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말과 같다)
강신주가 수행하는 작업이 바로 "구원" 단계이다. 어쨌든 위 멘토-힐링-독설-구원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하나는 개인에 천착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구조에 대한 개선 노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회구조라는 외부 문제의 해답을 오직 개인 내부에서만 찾는다. 그나마 강신주는 노무현의 사례에서 보듯이 일관성도 없다. 원래 '그들(친노 이데올로그)'과 관련된 사람치고 제대로된 사람이 없다.

지난 글에서 얼마 전까진 알지도 못했던 강신주가 이제 나에게 익숙해졌다고 썼는데, 이제 익숙함을 넘어 강신주를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글 몇 개로 그 사람의 전부를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강신주를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강신주는 그만큼 흔하고 정형화된 캐릭터다.

끝으로, 지난 글에서 내가 강신주의 자본주의 타파론은 기만적이라고 했는데 이는 강신주의 논리적 모순과 뻔한 한계를 비판한 것뿐 나는 시장경제 자체는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긍정한다. 편하고 효율적이니까. 하지만 시장경제만으로는 부족하니 대안과 보충을 고민하는 것이다. 시장경제의 편리함과 효율은 결국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하니까. 지금으로선 그나마 사회민주주의가 최선의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 실정에 맞게 사회민주주의를 접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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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신주에게서 사이비의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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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신주는 사이비 맞고, 그래서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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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강신주는 기껏해야 부조리한 친노 인기 강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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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뭐랄까 2014/02/10 22:46 # 삭제 답글

    글을 통해 아마도 뭔가를 드러내고 싶으신 게 있으니까 글을 썼겠지만,

    다만 누군가를 다 안다고 과연 그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지,
    글쓴이 입장에서 지금 비판하려고 하는 강신주라는 인간이 왜 더 크지 못하고 저것 밖에 안되는 대도 남 한테 떠들어야 할 수 밖에 없는 그의 아픔(?)도 생각해 보려고 했는지 의문이 듭니다.

    누구를 이해하려고 하면 그 사람이 살아 온 배경도 다 읽으면서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냥 글쓴이 입장으로 글이 쓰여진다는 느낌은 좀 많이 듭니다.

    글에 상대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몇자 적어봤습니다만, 쓰다보니 어쩌면 블로그를 통해서라도 이렇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도 그렇게 나쁠 것 같진 안다는 생각도 드네요. 우리가 자기 표현을 할 공간이 부족하긴 하죠. 그래도 공개적인 글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그래도 이렇게 자기를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다는 건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좀 주제넘은 댓글같기도 합니다만, 제목이라도 읽은 김에....
  • speculum 2014/02/11 00:54 #

    주제 넘은 댓글이라뇨. 모두 원론에 입각한 바른 말씀입니다. 다만 어떤 상황에선 원론보다 준론이 더 적절할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보기에) 눈 앞에서 사기를 치려는 사기꾼을 목격했을 때, 먼저 사기꾼에 대한 배려를 챙길 것인가, 적의를 드러내 상황을 전환시킬 것인가의 선택 문제입니다. 전 후자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알고보니 사정이 있더라 라는 식의 내재적 이해는 차후 문제지요. 저는 이 글을 읽은 사람이 이 글의 논리뿐 아니라 감정까지도 같이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게 개인블로그의 장점 아니겠습니까.
  • 마루빵 2014/02/11 01:07 # 답글

    강신주의 저서나 강연을 접해 본 적이 없어 그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자를 자처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서점가를 둘러보며 받은 인상은 오히려 거기에 아주 잘 영합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는데...
  • 찐빵 2014/02/25 18:43 # 삭제 답글

    제 생각에는 이분법적인 논리가 본인이 더 강력하다고 보는데요?그리고 강신주가 한 말의 본질을 크나크게 놓치고 있어요~모순됬다고요? 전혀 모순됨이 없습니다~당신이 편협한 시각에서 그의 철학을 생각하고 있다는 인상만 강하군요~인생의 진정성에 대하여 그는 말하고 있어요~인간으로서 본질적인 것에 대한 추구를 말하고있는거라고요~철학자는 어째야 한다 저째야한다 규정짓는 생각을 했다는 것부터가 엉터리같은 소리요~철학의 본질은 끊임없이 생각함에 있어요~철학이란것이 심오하고 난해해야지만 하는 것이 아니란 소리요~본질적인 부분에서 접근하기 시작하면 무엇을 얘기 하는지 알게될거요~강신주 같은 철학자의 생각을 까고 싶다면 더 그들을 깊이 알고 나서 까세요~ 일각으로 전부를 판단하는건 당신에게 이롭지 않을 듯 보이는 군요~~더 알아보세요! 그러고 까세요~제대로 알고 깐다면 당신의 철학에 내가 손을 들어줄지도 모르겠네요~
  • 2014/03/18 11:14 # 삭제 답글

    극성좌빨의 홍들홍들 보솤ㅋㅋㅋㅋㅋㅋㅋㅋ
  • 푸핫 2018/01/13 21:41 # 삭제

    미친새끼
  • 푸핫 2018/01/13 21:41 # 삭제

    미친새끼
  • 2014/03/19 05:20 # 삭제 답글

    강신주와 당신의차이 이기도 한데요
    그가 인문학을 이해하는 방법을 좀더
    분석해보세요
  • 지니 2014/05/02 02:29 # 삭제 답글

    글읽기 귀찮아서 답변만할게요. 원인은 사회로보고 해답은 개인에서 찾는이유는요... 윗선은 불변하고 개개인의 국민들이 지성과 자본주의의 노예가 스스로 되지말자고 자각을 해야만이 기득권들이 힘을 얻고싶어도 국민의 개개인이 부조리함을 깨우쳐있기때문에 통하지않는다는것이죠 개인의 무지는 국민들을 조롱하는 기득권에서 비롯되지요. 멍청함을 행하면서 멍청한자체를
    모르고 잘못된 선택들의 반복으로 국가에 종속되어가고 국민들은 기득권에게 부의분배를 위로 올라가게만들어버리지요. 그럼 깨우치는길 스스로 노예에서 탈피하는거지요. 사회는 개개인이 변함으로 전체에 반영되는것이지...한국의 정통인 세명중 두명이 Yes를 선택하면 No인줄알면서도 답은 Yes이다라는식이 바로 자본가들이 바라는 노예의 일부지요. 한명이 뉘우치고 그것이 10명이되고 전체가되는 날이와야 대한민국의 개개인의 권리를 마음껏 누릴 수 있어요. 전체를 반영하는 그 날을 오지않길 바라니 열심히 윗선에서 쇄뇌시키는 과정을 반복하지요..세월호참사를 보고 느끼세요. 우리나라는 인명보다 돈이중요한 그런 후진국에 불과하지요.. 후진국은 정부의탓이아니죠 국민들이 선택한거에요..ㅎㅎ 변화를 바라지않으니깐요...
  • 아난토리 2014/05/06 17:08 # 삭제 답글

    강신주에 관한 글중 가장 탁월한 분석입니다.
  • 오호이 2016/06/22 09:16 # 삭제 답글

    흠.. 또 저런 면이 있었군요.

    그런데 얼마전에, 강신주가 벙커원 강의였던가? 거기서는 노무현을 좋지 않게 평가했습니다. 그 사람이 FTA 체결하고 뭐 기타 등등으로 인권이나 이런게 엉망진창이 됐는데 자살까지 해버려 순교자까지 되버렸다.

    영웅, 리더, 초인에게 마음을 다 주고 맹목적으로 그걸 따르는 문화를 혐오하는 강신주의 특성상 노무현을 절대 좋게 안보고 있구나.. 생각했는데 또 저런 인터뷰도 있었네요.
  • 푸핫 2018/01/13 21:42 # 삭제 답글

    내가 보기엔 당신이 부조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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